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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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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 강원도 7시 11군 가운데 하나의 시(市)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이다. (2023년 9월 기준)
 
* 강원도 7시 11군 가운데 하나의 시(市)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이다. (2023년 9월 기준)
[[파일:조선 강원 춘천 행정구역.png|섬네일|500픽셀|캡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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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강원 춘천 행정구역.png|섬네일|500픽셀|조선시대 강원도 춘천 행정구역]]
  
 
== 건치연혁(조선~현재) ==
 
== 건치연혁(조선~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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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조선~현재) ==
 
== 면적(조선~현재) ==
* 춘천시의 면적은 1,116.4㎢로 서울의 1.8배이다. 강원도에서는 6.6%를 차지한다. 조선시대에 춘천의 관할 구역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오늘날 화천군 사내면 전역과 인제군 남면 일부, 그리고 인제군 기린면 전역과 상남면 일부가 조선시대에 춘천도호부 소속있고, 반대로 오늘날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와 북방면 북방리는 조선시대에 춘천 소속이었다가 홍천군으로 넘어간 땅이다. 한편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 일부는 조선시대에 춘천의 월경지(越境地)였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춘천도호부는 ’속현이 하나 있으니 기린(현)이다. 본래 고구려의 기지군(基知郡)인데, 고려 때 기린으로 고치고, 본조(조선)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 초기에 속현이 모두 사라지면서 기린현은 춘천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고, 행정구역 상으로는 춘천부 기린면이 되었다. 조선시대 춘천도호부의 관할 면적은 약 1,728㎢로 오늘날보다 약 1.5배 이상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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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의 면적은 1,116.4㎢로 서울의 1.8배이다. 강원도에서는 6.6%를 차지한다. 조선시대에 춘천의 관할 구역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오늘날 화천군 사내면 전역과 인제군 남면 일부, 그리고 인제군 기린면 전역과 상남면 일부가 조선시대에 춘천도호부 소속있고, 반대로 오늘날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와 북방면 북방리는 조선시대에 춘천 소속이었다가 홍천군으로 넘어간 땅이다. 한편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 일부는 조선시대에 춘천의 월경지(越境地)였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춘천도호부는 ’속현이 하나 있으니 기린(현)이다. 본래 고구려의 기지군(基知郡)인데, 고려 때 기린으로 고치고, 본조(조선)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 초기에 속현이 모두 사라지면서 기린현은 춘천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고, 행정구역 상으로는 춘천부 기린면이 되었다. 조선시대 춘천도호부의 관할 면적은 약 1,728㎢로 오늘날보다 약 1.5배 이상 넓었다.  
  
== 주요 지역 : 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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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고대~현재) ==
* 춘천은 상고시대에 맥국(貊國)의 중심지였다. 북산면 내평리, 추전리, 대곡리, 신북읍 천전리 발산리, 지내리, 서면 신매리, 금산리, 현암리, 서상리, 신동면 학곡리 북한강과 소양강 연안에 마흔 개가 넘는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중도에도 청동기 마을 유적을 포함하여 수 천 점의 선사 유적이 발견되었을 만큼 춘천에서는, 특히 소양강과 북한강 연안, 그리고 두 물줄기 사이의 범람원이 우두벌 일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해왔다. 중도 선사 유적지는 두 달만에 해체된 후 그 자리에 현재 위락 시설 레고랜드가 들어서 있다. 선사 유적이 섬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는 점이 오히려 보존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부라도 남겨 레고랜드의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중도는 1984년부터 1990년대까지 관광지로 이미 개발, 활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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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로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우두동 앞에서 만난다. 하나는 북쪽 화천에서 내려오는 북한강 본류이고, 다른 하나는 북동쪽 인제에서 내려오는 소양강이다. 우두동을 포함한 신사우동, 중도와 붕어섬, 춘천역과 예전 미군 부대(Camp Page)를 포함한 근화동 일대, 그리고 공지천 합수부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진 평지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든 범람원이다. 범람원은 북한강 서안 서면 신매리 일대와 소양강 북안 신북읍 천전리 일대까지 연장되어 있다. 이 들판은 북한강 유역 내 전체 범람원 중에서도 가장 넓다. 우두평은 춘천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강원도의 주요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준 핵심적인 자연지리적 기반이다.
* 중도는 의암댐(1967)이 건설된 후에는 크기가 크게 축소되었다. 지금은 윗중도(상중도)와 아랫중도(하중도)로 분리되었는데, 1971년 강 건너 서면과 춘천시 사이의 뱃길을 내기 위해 섬 허리를 일부러 끊었기 때문이다. 두 섬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으며, 하중도는 2018년 1월에 춘천역 뒤로 춘천대교가 완공, 연육되었다. 춘천대교는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수퍼콘크리트 사장교’이다. 일반 사장교 수명이 50-60년인데 반해 이는 200년 이상이라고 한다. 중도 아래 붕어섬 역시 의암댐으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하중도이다. 의암댐은 경춘가도의 노선도 크게 바꿔 놓았는데, 댐 건설 전에는 중도와 붕어섬 사이에 지금은 수몰된 춘천가도가 놓여 있었다. 댐 건설 이후 서울-춘천 시외버스는 의암댐을 건너 의암봉과 향로산을 돌아가는, 현 ‘옛경춘로’(일부 70번 도로)를 따라 오다가 공지천교를 건너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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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에서 가장 높은 산은 북쪽 화천쪽 경계에 있는 화악산(사북면 원평리, 1,138m)이다. 이 화악산은 가평군과 화천군 경계에 있는 또 다른 화악산(1,446m)과는 다른 산이다. 화악산 동쪽으로 점차 낮아지다가 북한강을 건너면 용화산(878m)-오봉산(779m)-부용산(881m)-사명산(1,195m)으로 이어진다. 산세가 그리 약하지 않다. 사명산을 지나면 산세는 협곡을 이루며 소양강을 건너 계명산(758m)-바위산(878m)으로 이어진다. 이후 고도는 다시 높아져 가리산(1,051m)-대룡산(899m)-연엽산(851m) 800미터 이상의 고봉이 춘천 동쪽에서 홍천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 역시 홍천과 경계를 이루지만 홍천강 합수점이 가까워지면서 고도는 다시 낮아진다. 구만산(331m)-잣방산(266m)-좌방산(502m)-홍천강–왕터산(411m)을 지나면 산줄기는 다시 북한강으로 끊어지고, 이어서 서쪽의 가평과 경계를 이루며 물안산(401m)-보납산(330m)-계관산(665m)-북배산(870m)-가덕산(878m)-몽덕산(695m)까지 북쪽의 화악산을 향해 갈수록 고도가 다시 높아진다. 이처럼 춘천은 외곽, 즉 가평-화천-양구-인제-홍천 등과의 접경지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혀 있는 전형적인 분지 형태를 띠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춘천JC를 지나 춘천 시내로 들어오다보면 춘천 분지가 한눈에 보인다. 춘천의 분지 경관은 시내에서 가까운 구봉산(동면 감정리)에서 잘 보인다. 최근에 구봉산 서록에 5번국도가 새로 나면서 구봉산전망대도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춘천 야경도 볼 만하다. 이 일대는 춘천의 분지 경관에 기반하여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가 빠른 속도로 입점했으며 네이버데이터센터와 춘천 NHN 도시첨단산업단지도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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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시내에도 곳곳에 작은 산이 있다. 봉의산은(鳳儀山, 301m) 도청과 시청의 배후를 지켜주는 춘천의 진산(鎭山)이다. 산정부에는 옛 성(봉의산성, 강원기념물 26호)과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봉의산은 풍수적으로 상서로운 봉황이 나래를 펴고 위의를 갖춘 모습이라 하여 이름 붙었다 한다. 봉의산 동록에는 석기시대 동굴혈거 유지가 발견되었고, 북록에는 삼국시대 때에 지어진 소양정(昭陽亭)이 북쪽의 소양강과 우두평을 지켜보듯 자리잡고 있다. 봉의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맥국의 도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이라면, 춘천의 중심지가 우두평에서 현재와 같은 봉의산 아래로 옮겨 온 때가 고려시대임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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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두동에는 우두산(牛頭山, 133.6m)이 있다.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두산 꼭대기에는 묘가 하나 있는데 ‘소슬뫼’라 불렸다. 일본인이 추앙하는 신의 하나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는 한국의 ‘소시모리’(曾尸茂梨, 금이 있는 마을)라는 곳에 살았는데, 일제는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해 소슬뫼가 바로 소시모리라며 이곳에 신사를 짓기도 하였다. 두 지명이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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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두산 아래에는 우두온수저수지가 있다. 온수저수지란 물의 온도를 덥히기 위해 만든 저수지를 일컫는다. 춘천에 온수저수지가 필요해진 것은 소양강댐 때문이다. 댐 건설 이후 모든 용수가 소양호 수면/수심? *m 지점에서 취수되는데, 이 물은 여름에도 작물에 냉해를 입힐 정도로 수온이 낮다. 이에 취수한 물을 가둔 후 태양열로 덥히기 의해 이 온수지를 만들었다. 춘천은 수돗물도 차서 여름에도 찬물로 샤워를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 이 온수지는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가 되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 확산되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봉의산, 구봉산, 우두산 외에도 향로산(314m, 칠전동), 국사봉(204m, 신동면 정족리), 안마산(303m, 퇴계동) 등은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지 않아 시민 누구라도 즐겨 찾는 트래킹 코스들이다.
  
󰡔대동지지󰡕(1864)에는 (춘천 치소) 북쪽 13리에 우두평고성이 있는데 맥국 때의 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우두동 일대를 일컬을 것이다. 춘천의 중심지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없지만, 우두평에서 현재와 같이 강 건너 봉의산 아래로 옮겨졌다. 고려시대 때 춘천의 이름은 춘주였고, 오늘날과 같이 춘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413년(태종 13)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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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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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은 전국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한다. 내세울만한 기반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그만큼 시민들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춘천의 지역내 총생산 7.3조원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산업 부문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21.2%, 1.6조원)이다. 도청 소재지답게 다종의 관공서가 밀집해 있고, 군부대가 산재해 있는 춘천 상황을 잘 반영한다. 춘천의 이 부문 비율은 강원도 내에서도 가장 높다(16.9%). 다음을 잇는 철원(8.9%), 원주(8.9%), 화천(8.8%)이 모두 춘천의 절반 수준이다. 두번째로 높은 부문은 11.0%의 교육서비스업이다. 춘천은 도 내에서 강원대, 한림대, 춘천교대 등 대학교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2019년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는 교직원이 2,316명이고, 대학ㆍ대학원 재적생은 24,589명(재학생 16,381)이었다. 춘천 안에서 단일 기관으로 인원 수가 가장 많은 기관이다(강원대 통계연보, 2020). 지역내 총생산액이 세 번째로 많은 산업 부문은 부동산업(7.2%)이고, 다음으로 보건업 및 산회복시 서비스업(6.6%), 건설업(6.4%), 제조업(6.1%), 사업서비스업(5.3%), 문화 및 기타서버스업(5.2%)이 뒤를 잇는다. 농업, 임업 및 어업(2.4%), 광업(0.3%), 건설업, 제조업, 순생산물세(6.3%)를 제외한 3차 서비스업이 약 78.5%를 차지하는데 종사자 비율은 이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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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원주시는 총생산액 9.1조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높은 부문은 제조업(17.3%)이고 가장 낮은 부문은 농업ㆍ임업 및 어업(1.2%)이다. 인구 순위 세 번째의 강릉시는 총생산액 5.0조 가운데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12.4%)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제조업(8.6%)이 그 뒤를 따른다. 이처럼 춘천은 제조업 비율이 특히 낮은데, 이는 곧 3차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춘천시로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우두동 앞에서 만난다. 하나는 북쪽 화천에서 내려오는 북한강 본류이고, 다른 하나는 북동쪽 인제에서 내려오는 소양강이다. 우두동을 포함한 신사우동, 중도와 붕어섬, 춘천역과 예전 미군 부대(Camp Page)를 포함한 근화동 일대, 그리고 공지천 합수부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진 평지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든 범람원이다. 범람원은 북한강 서안 서면 신매리 일대와 소양강 북안 신북읍 천전리 일대까지 연장되어 있다. 이 들판은 북한강 유역 내 전체 범람원 중에서도 가장 넓다. 우두평은 춘천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강원도의 주요 중심지로 기능할 있도록 해준 핵심적인 자연지리적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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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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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강원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강릉(27.3%), 속초(24.1%), 춘천(15.5%) 순으로 많았지만, 외국인 관광객만 따지면 춘천(49.1%)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강릉(34.0%)과 속초(13.8%)는 꽤 떨어진다.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을 위시하여 중국과 대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이 춘천을 찾는 주된 이유는 ‘겨울연가’를 촬영했던 남이섬이나 춘천 시내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이 드라마는 2002년에 방여되었는데, 이후 동북아 전역에서 크게 히트하였고, 주연을 맡았던 남녀 배우는 특히 일본에서 거의 국빈급의 대우를 받을 정도였다. 남이섬은 2002년 이후 줄곧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국내여행지 100선에서 빠지지 않는다. 매년 가을 자라섬에서 열리는 재즈페스티벌 역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한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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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춘선(성동역-춘천역)개통된 것은 1939년이다. 기점이었던 성동역은 1971년에 폐지되었는데, 그 자리에 오늘날 서울 지하철 제기동역이 들어서 있다. 경춘선은 2012년에 용산역-춘천역 간 ITX(Intercity Train eXpress)로 개편되었다. 2021년 평일 용산발 첫차는 06:00, 막차는 22:48에 출발하고, 춘천발 첫차는 06:08 막차는 22:14에 출발한다. 소요 시간은 1시간 10-20분이고 요금은 9,800원이며, 하루에 18회 운행한다. 주말에는 첫차와 막차 사이의 시간은 약간 짧아지지만 배차는 1.5배로 늘어 26회 운행한다. 주말에 용산발 첫차는 06:15, 막차는 22:05, 춘천발 첫차는 06:06, 막차 22:13이다. 주말에 증차되는 이유는 당연히 수도권 지역의 관광객으로 인해 이용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요 시간이 이전 철도 시절의 절반 수준으로 짧아졌고 밤 늦게까지 열차가 운행함으로써 과거 1박 이상으로 기획했던 춘천 여행은 점차 당일치기로 짧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춘천은 관광 수입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타났고, 근본 원인은 ITX에서 찾을 있다.
  
춘천에서 가장 높은 산은 북쪽 화천쪽 경계에 있는 화악산(사북면 원평리, 1,138m)이다. 이 화악산은 가평군과 화천군 경계에 있는 또 다른 화악산(1,446m)과는 다른 산이다. 화악산 동쪽으로 점차 낮아지다가 북한강을 건너면 용화산(878m)-오봉산(779m)-부용산(881m)-사명산(1,195m)으로 이어진다. 산세가 그리 약하지 않다. 사명산을 지나면 산세는 협곡을 이루며 소양강을 건너 계명산(758m)-바위산(878m)으로 이어진다. 이후 고도는 다시 높아져 가리산(1,051m)-대룡산(899m)-연엽산(851m) 등 800미터 이상의 고봉이 춘천 동쪽에서 홍천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 역시 홍천과 경계를 이루지만 홍천강 합수점이 가까워지면서 고도는 다시 낮아진다. 구만산(331m)-잣방산(266m)-좌방산(502m)-홍천강–왕터산(411m)을 지나면 산줄기는 다시 북한강으로 끊어지고, 이어서 서쪽의 가평과 경계를 이루며 물안산(401m)-보납산(330m)-계관산(665m)-북배산(870m)-가덕산(878m)-몽덕산(695m)까지 북쪽의 화악산을 향해 갈수록 고도가 다시 높아진다. 이처럼 춘천은 외곽, 즉 가평-화천-양구-인제-홍천 등과의 접경지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혀 있는 전형적인 분지 형태를 띠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춘천JC를 지나 춘천 시내로 들어오다보면 춘천 분지가 한눈에 보인다. 춘천의 분지 경관은 시내에서 가까운 구봉산(동면 감정리)에서 잘 보인다. 최근에 구봉산 서록에 5번국도가 새로 나면서 구봉산전망대도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춘천 야경도 볼 만하다. 이 일대는 춘천의 분지 경관에 기반하여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가 빠른 속도로 입점했으며 네이버데이터센터와 춘천 NHN 도시첨단산업단지도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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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로(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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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X는 특별급행 등급 열차를 뜻하는데, ITX-새마을과 ITX-청춘 두 종류가 있다. ITX-새마을은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대구선 등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ITX-청춘은 경춘선만을 지칭한다. 경춘선에 ‘청춘’이 붙은 이유는 서울시 동북 지역에 다른 지역에 비해 대학이 밀집해 있고, 대학생들이 MT 등의 활동을 위해 경춘선을 많이 이용한 것에서 경춘선은 청춘열차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70-1990년대에 대성리역, 청평역, 가평역, 강촌역 인근에는 이른바 엠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구 경춘선 노선 가운데 광운대역(구 연천역=성북역)부터 화랑대역(서울 지하철 6호선) 사이에는 ‘경춘선숲길’이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구 김유정역(신동면 증리)과 구 가평역 구간에서는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다.
  
춘천 시내에도 곳곳에 작은 산이 있다. 봉의산은(鳳儀山, 301m) 도청과 시청의 배후를 지켜주는 춘천의 진산(鎭山)이다. 산정부에는 옛 성(봉의산성, 강원기념물 26호)과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봉의산은 풍수적으로 상서로운 봉황이 나래를 펴고 위의를 갖춘 모습이라 하여 이름 붙었다 한다. 봉의산 동록에는 석기시대 동굴혈거 유지가 발견되었고, 북록에는 삼국시대 때에 지어진 소양정(昭陽亭)이 북쪽의 소양강과 우두평을 지켜보듯 자리잡고 있다. 봉의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맥국의 도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이라면, 춘천의 중심지가 우두평에서 현재와 같은 봉의산 아래로 옮겨 온 때가 고려시대임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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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장소 ==
우두동에는 우두산(牛頭山, 133.6m)이 있다.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두산 꼭대기에는 묘가 하나 있는데 ‘소슬뫼’라 불렸다. 일본인이 추앙하는 신의 하나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는 한국의 ‘소시모리’(曾尸茂梨, 금이 있는 마을)라는 곳에 살았는데, 일제는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해 소슬뫼가 바로 소시모리라며 이곳에 신사를 짓기도 하였다. 두 지명이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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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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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은 상고시대에 맥국(貊國)의 중심지였다. 북산면 내평리, 추전리, 대곡리, 신북읍 천전리 발산리, 지내리, 서면 신매리, 금산리, 현암리, 서상리, 신동면 학곡리 등 북한강과 소양강 연안에 마흔 개가 넘는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중도에도 청동기 마을 유적을 포함하여 수 천 점의 선사 유적이 발견되었을 만큼 춘천에서는, 특히 소양강과 북한강 연안, 그리고 두 물줄기 사이의 범람원이 우두벌 일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해왔다. 중도 선사 유적지는 두 달만에 해체된 후 그 자리에 현재 위락 시설 레고랜드가 들어서 있다. 선사 유적이 섬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는 점이 오히려 보존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부라도 남겨 레고랜드의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중도는 1984년부터 1990년대까지 관광지로 이미 개발, 활용되고 있었다.
우두산 아래에는 우두온수저수지가 있다. 온수저수지란 물의 온도를 덥히기 위해 만든 저수지를 일컫는다. 춘천에 온수저수지가 필요해진 것은 소양강댐 때문이다. 댐 건설 이후 모든 용수가 소양호 수면/수심? *m 지점에서 취수되는데, 이 물은 여름에도 작물에 냉해를 입힐 정도로 수온이 낮다. 이에 취수한 물을 가둔 후 태양열로 덥히기 의해 이 온수지를 만들었다. 춘천은 수돗물도 차서 여름에도 찬물로 샤워를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 이 온수지는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가 되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 확산되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봉의산, 구봉산, 우두산 외에도 향로산(314m, 칠전동), 국사봉(204m, 신동면 정족리), 안마산(303m, 퇴계동) 등은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지 않아 시민 누구라도 즐겨 찾는 트래킹 코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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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는 의암댐(1967)이 건설된 후에는 크기가 크게 축소되었다. 지금은 윗중도(상중도)와 아랫중도(하중도)로 분리되었는데, 1971년 강 건너 서면과 춘천시 사이의 뱃길을 내기 위해 섬 허리를 일부러 끊었기 때문이다. 두 섬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으며, 하중도는 2018년 1월에 춘천역 뒤로 춘천대교가 완공, 연육되었다. 춘천대교는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수퍼콘크리트 사장교’이다. 일반 사장교 수명이 50-60년인데 반해 이는 200년 이상이라고 한다. 중도 아래 붕어섬 역시 의암댐으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하중도이다. 의암댐은 경춘가도의 노선도 크게 바꿔 놓았는데, 댐 건설 전에는 중도와 붕어섬 사이에 지금은 수몰된 춘천가도가 놓여 있었다. 댐 건설 이후 서울-춘천 시외버스는 의암댐을 건너 의암봉과 향로산을 돌아가는, 현 ‘옛경춘로’(일부 70번 도로)를 따라 오다가 공지천교를 건너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춘천은 전국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한다. 내세울만한 기반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그만큼 시민들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춘천의 지역내 총생산 7.3조원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산업 부문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21.2%, 1.6조원)이다. 도청 소재지답게 다종의 관공서가 밀집해 있고, 군부대가 산재해 있는 춘천 상황을 잘 반영한다. 춘천의 이 부문 비율은 강원도 내에서도 가장 높다(16.9%). 다음을 잇는 철원(8.9%), 원주(8.9%), 화천(8.8%)이 모두 춘천의 절반 수준이다. 두번째로 높은 부문은 11.0%교육서비스업이다. 춘천은 도 내에서 강원대, 한림대, 춘천교대 등 대학교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2019년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는 교직원이 2,316명이고, 대학ㆍ대학원 재적생은 24,589명(재학생 16,381)이었다. 춘천 안에서 단일 기관으로 인원 수가 가장 많은 기관이다(강원대 통계연보, 2020). 지역내 총생산액이 세 번째로 많은 산업 부문은 부동산업(7.2%)이고, 다음으로 보건업 및 산회복시 서비스업(6.6%), 건설업(6.4%), 제조업(6.1%), 사업서비스업(5.3%), 문화 및 기타서버스업(5.2%)이 뒤를 잇는다. 농업, 임업 및 어업(2.4%), 광업(0.3%), 건설업, 제조업, 순생산물세(6.3%)를 제외한 3차 서비스업이 약 78.5%를 차지하는데 종사자 수 비율은 이보다 더 크다.
 
 
도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원주시는 총생산액 9.1조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높은 부문은 제조업(17.3%)이고 가장 낮은 부문은 농업ㆍ임업 및 어업(1.2%)이다. 인구 순위 세 번째의 강릉시는 총생산액 5.0조 가운데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12.4%)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제조업(8.6%)이 그 뒤를 따른다. 이처럼 춘천은 제조업 비율이 특히 낮은데, 이는 곧 3차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닭갈비 ==
 
춘천의 대표 음식은 단연 닭갈비다. 닭갈비는 해외 방송국(CNN)에서 지정한 한국 음식 베스트10 안에 들었고, 춘천 시내에 수백 개의 닭갈비집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인기있는 메뉴이다. 그럼에도 춘천에는 닭갈비 프랜차이즈 식당이 없는 것은 매우 독특하다. 집집마다 고유한 맛을 지키려는 전통을 중시하는 듯하다. 춘천에서 닭갈비 1인분 가격은 춘천의 물가 지수로 사용될 정도이다. 2021년 현재 닭갈비는 1인분에 12,000원 내외이다. 닭갈비집이 많은 만큼 춘천에는 양계장과 닭고기 유통 업체들도 밀집해 있다. 지금도 초등학교 한 반 안에는 닭갈비집 자녀가 2-3명 된다고 한다.  
 
 
 
닭갈비집이 특히 몰려 있는 곳으로 ‘명동닭갈비골목’이 있다. 흔히 명동으로 불리지만 춘천에 명동이라는 동(洞)은 없다. 이곳 닭갈비골목은 조양동(금강로 62번길)에 속한다. 춘천의 대표적인 시장인 중앙시장(또는 낭만시장, 중앙로2가동)이 196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하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자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슷하다하여 이름 붙었다. 명동이 공식적인 지명이 아님에도 이 이름으로 편지나 택배를 부쳐도 안전하게 배달된다고 한다.
 
 
 
유명세와 달리 닭갈비 음식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신라시대부터 내장을 뺀 닭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던 풍습에서 비롯됐다거나, 오래전부터 춘천에 도계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개발됐다는 설이 있다. 춘천역 앞의 캠프 페이지도 이전에 양계장 자리였다고 한다. 닭갈비집은 1950년대 후반 중앙로에서 양념 닭불고기를 팔았던 것으로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길 건너 낙원동과 요선동까지 확산되었다. 닭갈비는 실제 갈빗살이 아니라 주로 다릿살을 사용하기 때문에 닭갈비보다는 닭불고기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 이에 처음에는 닭갈비가 아니라 닭불고기로 시작하였다. 닭갈비라는 이름은 1974년 옛 춘성군청 자리 부근에 있던 육림닭갈비집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춘천의 유명한 닭갈비집이 개업한 때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다. 
 
 
 
또 다른 춘천 닭갈비 유래는 1960년대에 현재 다나연세의원(중앙로 59) 자리에 있던 선술집에서 시작한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돼지고기였는데, 어느 때엔가 돼지고기 수급이 어려워졌고, 이에 닭고기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 냈더니 반응이 좋아 돼지고기를 밀어내고 메인 메뉴가 됐다는 설이다. 오늘날 닭갈비는 12mm 무쇠솥에 양배추 등의 채소와 함께 볶아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초기 형태는 양념 닭 숯불구이였다. 철판이 등장하는 것은 1990년대이며, 이후 채소와 함께 볶는 요리 방식도 일반화되었고, 대중매체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으로 거듭났다. 닭갈비 요리에 철판이 등장한 것은 연료의 변화, 즉 가스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점차 도시가스의 공급이 확산되면서 불을 지피는데 불편하고 연기가 나는 숯이나 연탄 대신 가스가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걸맞는 조리 도구 무쇠 철판이 개발, 도입된 것이다.  
 
  
닭갈비가 갈비로 불리게 된 까닭은 뼈째 굽는 모습이 갈비구이와 비슷해서인 듯하다. 춘천에서 닭갈비는 초기에 서민갈비, 군인갈비, 대학생갈비 등으로도 불렸다.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사 먹을 만큼 돈이 많지 않는 사람들이 비록 갈비는 아니지만 갈비 먹는 기분이라도 내자며 갈비라는 이름을 고수했다고 한다.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어 치즈, 고구마, 떡, 야채, 우동사리 등의 각종 토핑이 추가되었고, 마지막엔 양념과 함께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며 전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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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두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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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지지』(1864)에는 (춘천 치소) 북쪽 13리에 우두평고성이 있는데 맥국 때의 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우두동 일대를 일컬을 것이다. 춘천의 중심지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두평에서 현재와 같이 강 건너 봉의산 아래로 옮겨졌다. 고려시대 때 춘천의 이름은 춘주였고, 오늘날과 같이 춘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413년(태종 13)부터이다.
  
== 관광(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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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테마 ==
2018년 강원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강릉(27.3%), 속초(24.1%), 춘천(15.5%) 순으로 많았지만, 외국인 관광객만 따지면 춘천(49.1%)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강릉(34.0%)과 속초(13.8%)는 꽤 떨어진다.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을 위시하여 중국과 대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이 춘천을 찾는 주된 이유는 ‘겨울연가’를 촬영했던 남이섬이나 춘천 시내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드라마는 2002년에 방여되었는데, 이후 동북아 전역에서 크게 히트하였고, 주연을 맡았던 남녀 배우는 특히 일본에서 거의 국빈급의 대우를 받을 정도였다. 남이섬은 2002년 이후 줄곧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국내여행지 100선에서 빠지지 않는다. 매년 가을 자라섬에서 열리는 재즈페스티벌 역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한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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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갈비 ===
경춘선(성동역-춘천역)이 개통된 것은 1939년이다. 기점이었던 성동역은 1971년에 폐지되었는데, 그 자리에 오늘날 서울 지하철 제기동역이 들어서 있다. 경춘선은 2012년에 용산역-춘천역 간 ITX(Intercity Train eXpress)로 개편되었다. 2021년 평일 용산발 첫차는 06:00, 막차는 22:48에 출발하고, 춘천발 첫차는 06:08 막차는 22:14에 출발한다. 소요 시간은 1시간 10-20분이고 요금은 9,800원이며, 하루에 18회 운행한다. 주말에는 첫차와 막차 사이의 시간은 약간 짧아지지만 배차는 1.5배로 늘어 26회 운행한다. 주말에 용산발 첫차는 06:15, 막차는 22:05, 춘천발 첫차는 06:06, 막차 22:13이다. 주말에 증차되는 이유는 당연히 수도권 지역의 관광객으로 인해 이용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요 시간이 이전 철도 시절의 절반 수준으로 짧아졌고 밤 늦게까지 열차가 운행함으로써 과거 1박 이상으로 기획했던 춘천 여행은 점차 당일치기로 짧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춘천은 관광 수입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타났고, 근본 원인은 ITX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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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대표 음식은 단연 닭갈비다. 닭갈비는 해외 방송국(CNN)에서 지정한 한국 음식 베스트10 안에 들었고, 춘천 시내에 수백 개의 닭갈비집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인기있는 메뉴이다. 그럼에도 춘천에는 닭갈비 프랜차이즈 식당이 없는 것은 매우 독특하다. 집집마다 고유한 맛을 지키려는 전통을 중시하는 듯하다. 춘천에서 닭갈비 1인분 가격은 춘천의 물가 지수로 사용될 정도이다. 2021년 현재 닭갈비는 1인분에 12,000원 내외이다. 닭갈비집이 많은 만큼 춘천에는 양계장과 닭고기 유통 업체들도 밀집해 있다. 지금도 초등학교 한 반 안에는 닭갈비집 자녀가 2-3명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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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갈비집이 특히 몰려 있는 곳으로 ‘명동닭갈비골목’이 있다. 흔히 명동으로 불리지만 춘천에 명동이라는 동()은 없다. 이곳 닭갈비골목은 조양동(금강로 62번길)에 속한다. 춘천의 대표적인 시장인 중앙시장(또는 낭만시장, 중앙로2가동)196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하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자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슷하다하여 이름 붙었다. 명동이 공식적인 지명이 아님에도 이 이름으로 편지나 택배를 부쳐도 안전하게 배달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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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세와 달리 닭갈비 음식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신라시대부터 내장을 뺀 닭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던 풍습에서 비롯됐다거나, 오래전부터 춘천에 도계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개발됐다는 설이 있다. 춘천역 앞의 캠프 페이지도 이전에 양계장 자리였다고 한다. 닭갈비집은 1950년대 후반 중앙로에서 양념 닭불고기를 팔았던 것으로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길 건너 낙원동과 요선동까지 확산되었다. 닭갈비는 실제 갈빗살이 아니라 주로 다릿살을 사용하기 때문에 닭갈비보다는 닭불고기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 이에 처음에는 닭갈비가 아니라 닭불고기로 시작하였다. 닭갈비라는 이름은 1974년 옛 춘성군청 자리 부근에 있던 육림닭갈비집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춘천의 유명한 닭갈비집이 개업한 때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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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춘천 닭갈비 유래는 1960년대에 현재 다나연세의원(중앙로 59) 자리에 있던 선술집에서 시작한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돼지고기였는데, 어느 때엔가 돼지고기 수급이 어려워졌고, 이에 닭고기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 냈더니 반응이 좋아 돼지고기를 밀어내고 메인 메뉴가 됐다는 설이다. 오늘날 닭갈비는 12mm 무쇠솥에 양배추 등의 채소와 함께 볶아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초기 형태는 양념 닭 숯불구이였다. 철판이 등장하는 것은 1990년대이며, 이후 채소와 함께 볶는 요리 방식도 일반화되었고, 대중매체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으로 거듭났다. 닭갈비 요리에 철판이 등장한 것은 연료의 변화, 즉 가스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점차 도시가스의 공급이 확산되면서 불을 지피는데 불편하고 연기가 나는 숯이나 연탄 대신 가스가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걸맞는 조리 도구 무쇠 철판이 개발, 도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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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갈비가 갈비로 불리게 된 까닭은 뼈째 굽는 모습이 갈비구이와 비슷해서인 듯하다. 춘천에서 닭갈비는 초기에 서민갈비, 군인갈비, 대학생갈비 등으로도 불렸다.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사 먹을 만큼 돈이 많지 않는 사람들이 비록 갈비는 아니지만 갈비 먹는 기분이라도 내자며 갈비라는 이름을 고수했다고 한다.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어 치즈, 고구마, 떡, 야채, 우동사리 등의 각종 토핑이 추가되었고, 마지막엔 양념과 함께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며 전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 교통로(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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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이력 ==
ITX는 특별급행 등급 열차를 뜻하는데, ITX-새마을과 ITX-청춘 두 종류가 있다. ITX-새마을은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대구선 등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ITX-청춘은 경춘선만을 지칭한다. 경춘선에 ‘청춘’이 붙은 이유는 서울시 동북 지역에 다른 지역에 비해 대학이 밀집해 있고, 대학생들이 MT 등의 활동을 위해 경춘선을 많이 이용한 것에서 경춘선은 청춘열차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70-1990년대에 대성리역, 청평역, 가평역, 강촌역 인근에는 이른바 엠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구 경춘선 노선 가운데 광운대역(구 연천역=성북역)부터 화랑대역(서울 지하철 6호선) 사이에는 ‘경춘선숲길’이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구 김유정역(신동면 증리)과 구 가평역 구간에서는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다.
 
 
 
== 문서이력 ==
 
 
* 김종혁 : 2021년 7월 6일, 최초 작성
 
* 김종혁 : 2021년 7월 6일, 최초 작성
 
* 김현종 : 2023년 9월, 문서 서식 조정
 
* 김현종 : 2023년 9월, 문서 서식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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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구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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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정보도 조선시대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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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인구밀도 지도(춘천 중심), 그래도 강원도 내 순위를 제시하는 게 좋을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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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술식이 좋을지 개조식이 좋을지 결정 필요(서술이 낭만이 있기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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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넣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음. 20년전, 10년전, 현재, 장소별로^^:

2023년 9월 18일 (월) 00:05 기준 최신판

개요

  • 강원도 7시 11군 가운데 하나의 시(市)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이다. (2023년 9월 기준)
조선시대 강원도 춘천 행정구역

건치연혁(조선~현재)

  • 조선시대에 강원도 감영은 대대로 원주에 있었다. 15세기 초에 정립된 8도제는 1895년에 처음으로 체제를 바꿔 23부제가 되고, 이듬해인 1896년에 경기ㆍ강원ㆍ황해도를 제외한 5개 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13도제가 되는데, 이때 강원 도청이 갑자기 원주에서 춘천으로 옮겨 온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는데, 도청소재지가 되기 7년 전인 1888년(고종 25)에 춘천의 읍격이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된 것과 관련되는 듯하다.
  • 조선시대에 수도 한성의 동서남북 4방위에 개성, 강화, 광주, 수원이 순차적으로 유수부가 되는데, 춘천은 대대로 도호부였다. 도호부사는 종3품관이고, 유수의 품계는 종2품이다. 고종은 19세기 말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고 싶었을까? 춘천을 유사시 피난처로 지목하고 읍격을 유수부로 승격시킨 후 춘천 유수 민두호에게 현 도청 자리에 이궁(離宮)을 짓게 한다. 유수부는 경기도에만 두었고, 형태적으로는 외관직이지만 직제상으로는 경관직에 속하는 최상위 지방 행정 단위였다. 춘천은 그래서 1888년부터 강원도로 환속하는 1896년까지 8년간 잠시 경기도에 속한 이력도 있다. 1896년 13도제가 시작되면서 강원도는 다시 이름을 되찾았고, 강원도에서 읍격이 가장 높았던 춘천이 새로운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 1895년 23부제의 요체는 1차 지방행정구역 단위를 8개의 도에서 23개의 중심 도시, 즉 부(府)로 바꾼 것에 있다. 당시 강원도는 함흥부, 강릉부, 춘천부, 충주부로 분할되었는데, 강원 감영이었던 원주가 충주부 안으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원주는 충주와의 경쟁에서 탈락한 셈이고, 이듬해 다시 강원도로 복귀할 때는 이미 도 대표 도시로서의 이미지나 명분을 찾기 어려웠다. 이 점에서도 강원도의 새로운 도청소재지는 원주보다 춘천이 더 적합한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1896년 춘천이 도청소재지를 유치한 것은 오늘날까지도 춘천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 1896년에 처음 도청이 들어선 곳은 조선시대 도호부청사가 있던 곳이고, 유수부 시절 이궁도 이 치소 부지 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시기에는 도청 뒤쪽에 춘천신사를 지었는데, 지금도 세종호텔 건물 뒤쪽에 초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객사, 그리고 이궁이 있던 자리일 것이다. 현재 도청도 옛 치소 터에 있다. 1957년에 신축된 것으로 계속 별관과 신관, 제2청사를 증축해 왔지만 지속적으로 업무 공간이 부족하고 안정성에도 문제가 제기되면서 신청사 건축이 계획 중에 있다. 강원도청사 건물은 춘천시 청사보다 작다. 시청사는 2018년에 같은 자리에 새로 지었다.

인구(현재)

  • 춘천시의 인구는 2020년 말에 28.6만 명으로 도 내 인구의 17.2%에 달한다. 춘천시의 세대는 12.7만 세대이고, 세대 당 인구는 2.3명이다(강원도 2.1명). 춘천의 인구는 강원도에서 원주시(35.8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이다. 세 번째는 강릉시(21.6만명)로 세 도시 인구가 각기 7만 명씩 차이가 난다. 28.6만 명 가운데 시부(市部)에 22.5만 명(78.6%), 군부(郡部)에 6.1만 명(21.4%)이 거주한다. 읍면동 중에서는 퇴계동의 인구가 가장 많고(4.9만명), 반대로 가장 적은 곳은 북산면(961명, 0.3%)이다. 성비는 97.7로 여초 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군부가 101.6이고, 시부는 96.7이다. 여초 현상은 역시 시부에서 더 강하다.
  • 춘천은 도 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2020년 말 기준으로 춘천의 외국인 수는 3,724명으로 원주의 3,334명과 강릉의 2,282, 고성의 1,112명보다 많다. 춘천의 외국인 중에는 베트남 출신이 1,152명(30.9%)으로 가장 많고 두 번째는 중국인 868명(23.3%)으로 두 국적자가 전체 외국인의 절반을 넘는다. 지역별로는 효자2동이 717명(19.3%)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교동에 542명(14.6%), 효자3동에 404명(10.8%), 후평1동에 391명(10.5%)이 거주한다. 외국인의 거주 비율은 군부보다는 시부(3,209명, 86.2%)가 훨씬 높다.

면적(조선~현재)

  • 춘천시의 면적은 1,116.4㎢로 서울의 1.8배이다. 강원도에서는 6.6%를 차지한다. 조선시대에 춘천의 관할 구역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오늘날 화천군 사내면 전역과 인제군 남면 일부, 그리고 인제군 기린면 전역과 상남면 일부가 조선시대에 춘천도호부 소속있고, 반대로 오늘날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와 북방면 북방리는 조선시대에 춘천 소속이었다가 홍천군으로 넘어간 땅이다. 한편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 일부는 조선시대에 춘천의 월경지(越境地)였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춘천도호부는 ’속현이 하나 있으니 기린(현)이다. 본래 고구려의 기지군(基知郡)인데, 고려 때 기린으로 고치고, 본조(조선)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조선 초기에 속현이 모두 사라지면서 기린현은 춘천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고, 행정구역 상으로는 춘천부 기린면이 되었다. 조선시대 춘천도호부의 관할 면적은 약 1,728㎢로 오늘날보다 약 1.5배 이상 넓었다.

산천(고대~현재)

  • 춘천시로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우두동 앞에서 만난다. 하나는 북쪽 화천에서 내려오는 북한강 본류이고, 다른 하나는 북동쪽 인제에서 내려오는 소양강이다. 우두동을 포함한 신사우동, 중도와 붕어섬, 춘천역과 예전 미군 부대(Camp Page)를 포함한 근화동 일대, 그리고 공지천 합수부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진 평지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든 범람원이다. 범람원은 북한강 서안 서면 신매리 일대와 소양강 북안 신북읍 천전리 일대까지 연장되어 있다. 이 들판은 북한강 유역 내 전체 범람원 중에서도 가장 넓다. 우두평은 춘천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강원도의 주요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준 핵심적인 자연지리적 기반이다.
  • 춘천에서 가장 높은 산은 북쪽 화천쪽 경계에 있는 화악산(사북면 원평리, 1,138m)이다. 이 화악산은 가평군과 화천군 경계에 있는 또 다른 화악산(1,446m)과는 다른 산이다. 화악산 동쪽으로 점차 낮아지다가 북한강을 건너면 용화산(878m)-오봉산(779m)-부용산(881m)-사명산(1,195m)으로 이어진다. 산세가 그리 약하지 않다. 사명산을 지나면 산세는 협곡을 이루며 소양강을 건너 계명산(758m)-바위산(878m)으로 이어진다. 이후 고도는 다시 높아져 가리산(1,051m)-대룡산(899m)-연엽산(851m) 등 800미터 이상의 고봉이 춘천 동쪽에서 홍천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 역시 홍천과 경계를 이루지만 홍천강 합수점이 가까워지면서 고도는 다시 낮아진다. 구만산(331m)-잣방산(266m)-좌방산(502m)-홍천강–왕터산(411m)을 지나면 산줄기는 다시 북한강으로 끊어지고, 이어서 서쪽의 가평과 경계를 이루며 물안산(401m)-보납산(330m)-계관산(665m)-북배산(870m)-가덕산(878m)-몽덕산(695m)까지 북쪽의 화악산을 향해 갈수록 고도가 다시 높아진다. 이처럼 춘천은 외곽, 즉 가평-화천-양구-인제-홍천 등과의 접경지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혀 있는 전형적인 분지 형태를 띠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춘천JC를 지나 춘천 시내로 들어오다보면 춘천 분지가 한눈에 보인다. 춘천의 분지 경관은 시내에서 가까운 구봉산(동면 감정리)에서 잘 보인다. 최근에 구봉산 서록에 5번국도가 새로 나면서 구봉산전망대도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춘천 야경도 볼 만하다. 이 일대는 춘천의 분지 경관에 기반하여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가 빠른 속도로 입점했으며 네이버데이터센터와 춘천 NHN 도시첨단산업단지도 조성되어 있다.
  • 춘천 시내에도 곳곳에 작은 산이 있다. 봉의산은(鳳儀山, 301m) 도청과 시청의 배후를 지켜주는 춘천의 진산(鎭山)이다. 산정부에는 옛 성(봉의산성, 강원기념물 26호)과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봉의산은 풍수적으로 상서로운 봉황이 나래를 펴고 위의를 갖춘 모습이라 하여 이름 붙었다 한다. 봉의산 동록에는 석기시대 동굴혈거 유지가 발견되었고, 북록에는 삼국시대 때에 지어진 소양정(昭陽亭)이 북쪽의 소양강과 우두평을 지켜보듯 자리잡고 있다. 봉의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맥국의 도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이라면, 춘천의 중심지가 우두평에서 현재와 같은 봉의산 아래로 옮겨 온 때가 고려시대임을 방증한다.
  • 우두동에는 우두산(牛頭山, 133.6m)이 있다.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두산 꼭대기에는 묘가 하나 있는데 ‘소슬뫼’라 불렸다. 일본인이 추앙하는 신의 하나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는 한국의 ‘소시모리’(曾尸茂梨, 금이 있는 마을)라는 곳에 살았는데, 일제는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해 소슬뫼가 바로 소시모리라며 이곳에 신사를 짓기도 하였다. 두 지명이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이다.
  • 우두산 아래에는 우두온수저수지가 있다. 온수저수지란 물의 온도를 덥히기 위해 만든 저수지를 일컫는다. 춘천에 온수저수지가 필요해진 것은 소양강댐 때문이다. 댐 건설 이후 모든 용수가 소양호 수면/수심? *m 지점에서 취수되는데, 이 물은 여름에도 작물에 냉해를 입힐 정도로 수온이 낮다. 이에 취수한 물을 가둔 후 태양열로 덥히기 의해 이 온수지를 만들었다. 춘천은 수돗물도 차서 여름에도 찬물로 샤워를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 이 온수지는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가 되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 확산되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봉의산, 구봉산, 우두산 외에도 향로산(314m, 칠전동), 국사봉(204m, 신동면 정족리), 안마산(303m, 퇴계동) 등은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지 않아 시민 누구라도 즐겨 찾는 트래킹 코스들이다.

도시(현재)

  • 춘천은 전국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한다. 내세울만한 기반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그만큼 시민들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춘천의 지역내 총생산 7.3조원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산업 부문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21.2%, 1.6조원)이다. 도청 소재지답게 다종의 관공서가 밀집해 있고, 군부대가 산재해 있는 춘천 상황을 잘 반영한다. 춘천의 이 부문 비율은 강원도 내에서도 가장 높다(16.9%). 다음을 잇는 철원(8.9%), 원주(8.9%), 화천(8.8%)이 모두 춘천의 절반 수준이다. 두번째로 높은 부문은 11.0%의 교육서비스업이다. 춘천은 도 내에서 강원대, 한림대, 춘천교대 등 대학교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2019년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는 교직원이 2,316명이고, 대학ㆍ대학원 재적생은 24,589명(재학생 16,381)이었다. 춘천 안에서 단일 기관으로 인원 수가 가장 많은 기관이다(강원대 통계연보, 2020). 지역내 총생산액이 세 번째로 많은 산업 부문은 부동산업(7.2%)이고, 다음으로 보건업 및 산회복시 서비스업(6.6%), 건설업(6.4%), 제조업(6.1%), 사업서비스업(5.3%), 문화 및 기타서버스업(5.2%)이 뒤를 잇는다. 농업, 임업 및 어업(2.4%), 광업(0.3%), 건설업, 제조업, 순생산물세(6.3%)를 제외한 3차 서비스업이 약 78.5%를 차지하는데 종사자 수 비율은 이보다 더 크다.
  • 도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원주시는 총생산액 9.1조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높은 부문은 제조업(17.3%)이고 가장 낮은 부문은 농업ㆍ임업 및 어업(1.2%)이다. 인구 순위 세 번째의 강릉시는 총생산액 5.0조 가운데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12.4%)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제조업(8.6%)이 그 뒤를 따른다. 이처럼 춘천은 제조업 비율이 특히 낮은데, 이는 곧 3차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관광(현재)

  • 2018년 강원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강릉(27.3%), 속초(24.1%), 춘천(15.5%) 순으로 많았지만, 외국인 관광객만 따지면 춘천(49.1%)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강릉(34.0%)과 속초(13.8%)는 꽤 떨어진다.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을 위시하여 중국과 대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이 춘천을 찾는 주된 이유는 ‘겨울연가’를 촬영했던 남이섬이나 춘천 시내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이 드라마는 2002년에 방여되었는데, 이후 동북아 전역에서 크게 히트하였고, 주연을 맡았던 남녀 배우는 특히 일본에서 거의 국빈급의 대우를 받을 정도였다. 남이섬은 2002년 이후 줄곧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국내여행지 100선에서 빠지지 않는다. 매년 가을 자라섬에서 열리는 재즈페스티벌 역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한몫하고 있다.
  • 경춘선(성동역-춘천역)이 개통된 것은 1939년이다. 기점이었던 성동역은 1971년에 폐지되었는데, 그 자리에 오늘날 서울 지하철 제기동역이 들어서 있다. 경춘선은 2012년에 용산역-춘천역 간 ITX(Intercity Train eXpress)로 개편되었다. 2021년 평일 용산발 첫차는 06:00, 막차는 22:48에 출발하고, 춘천발 첫차는 06:08 막차는 22:14에 출발한다. 소요 시간은 1시간 10-20분이고 요금은 9,800원이며, 하루에 18회 운행한다. 주말에는 첫차와 막차 사이의 시간은 약간 짧아지지만 배차는 1.5배로 늘어 26회 운행한다. 주말에 용산발 첫차는 06:15, 막차는 22:05, 춘천발 첫차는 06:06, 막차 22:13이다. 주말에 증차되는 이유는 당연히 수도권 지역의 관광객으로 인해 이용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요 시간이 이전 철도 시절의 절반 수준으로 짧아졌고 밤 늦게까지 열차가 운행함으로써 과거 1박 이상으로 기획했던 춘천 여행은 점차 당일치기로 짧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춘천은 관광 수입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타났고, 근본 원인은 ITX에서 찾을 수 있다.

교통로(현재)

  • ITX는 특별급행 등급 열차를 뜻하는데, ITX-새마을과 ITX-청춘 두 종류가 있다. ITX-새마을은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대구선 등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ITX-청춘은 경춘선만을 지칭한다. 경춘선에 ‘청춘’이 붙은 이유는 서울시 동북 지역에 다른 지역에 비해 대학이 밀집해 있고, 대학생들이 MT 등의 활동을 위해 경춘선을 많이 이용한 것에서 경춘선은 청춘열차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70-1990년대에 대성리역, 청평역, 가평역, 강촌역 인근에는 이른바 엠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구 경춘선 노선 가운데 광운대역(구 연천역=성북역)부터 화랑대역(서울 지하철 6호선) 사이에는 ‘경춘선숲길’이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구 김유정역(신동면 증리)과 구 가평역 구간에서는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다.

주요 장소

중도

  • 춘천은 상고시대에 맥국(貊國)의 중심지였다. 북산면 내평리, 추전리, 대곡리, 신북읍 천전리 발산리, 지내리, 서면 신매리, 금산리, 현암리, 서상리, 신동면 학곡리 등 북한강과 소양강 연안에 마흔 개가 넘는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중도에도 청동기 마을 유적을 포함하여 수 천 점의 선사 유적이 발견되었을 만큼 춘천에서는, 특히 소양강과 북한강 연안, 그리고 두 물줄기 사이의 범람원이 우두벌 일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해왔다. 중도 선사 유적지는 두 달만에 해체된 후 그 자리에 현재 위락 시설 레고랜드가 들어서 있다. 선사 유적이 섬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는 점이 오히려 보존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부라도 남겨 레고랜드의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중도는 1984년부터 1990년대까지 관광지로 이미 개발, 활용되고 있었다.
  • 중도는 의암댐(1967)이 건설된 후에는 크기가 크게 축소되었다. 지금은 윗중도(상중도)와 아랫중도(하중도)로 분리되었는데, 1971년 강 건너 서면과 춘천시 사이의 뱃길을 내기 위해 섬 허리를 일부러 끊었기 때문이다. 두 섬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으며, 하중도는 2018년 1월에 춘천역 뒤로 춘천대교가 완공, 연육되었다. 춘천대교는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수퍼콘크리트 사장교’이다. 일반 사장교 수명이 50-60년인데 반해 이는 200년 이상이라고 한다. 중도 아래 붕어섬 역시 의암댐으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하중도이다. 의암댐은 경춘가도의 노선도 크게 바꿔 놓았는데, 댐 건설 전에는 중도와 붕어섬 사이에 지금은 수몰된 춘천가도가 놓여 있었다. 댐 건설 이후 서울-춘천 시외버스는 의암댐을 건너 의암봉과 향로산을 돌아가는, 현 ‘옛경춘로’(일부 70번 도로)를 따라 오다가 공지천교를 건너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우두평

  • 『대동지지』(1864)에는 (춘천 치소) 북쪽 13리에 우두평고성이 있는데 맥국 때의 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우두동 일대를 일컬을 것이다. 춘천의 중심지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두평에서 현재와 같이 강 건너 봉의산 아래로 옮겨졌다. 고려시대 때 춘천의 이름은 춘주였고, 오늘날과 같이 춘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413년(태종 13)부터이다.

지역 테마

닭갈비

  • 춘천의 대표 음식은 단연 닭갈비다. 닭갈비는 해외 방송국(CNN)에서 지정한 한국 음식 베스트10 안에 들었고, 춘천 시내에 수백 개의 닭갈비집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인기있는 메뉴이다. 그럼에도 춘천에는 닭갈비 프랜차이즈 식당이 없는 것은 매우 독특하다. 집집마다 고유한 맛을 지키려는 전통을 중시하는 듯하다. 춘천에서 닭갈비 1인분 가격은 춘천의 물가 지수로 사용될 정도이다. 2021년 현재 닭갈비는 1인분에 12,000원 내외이다. 닭갈비집이 많은 만큼 춘천에는 양계장과 닭고기 유통 업체들도 밀집해 있다. 지금도 초등학교 한 반 안에는 닭갈비집 자녀가 2-3명 된다고 한다.
  • 닭갈비집이 특히 몰려 있는 곳으로 ‘명동닭갈비골목’이 있다. 흔히 명동으로 불리지만 춘천에 명동이라는 동(洞)은 없다. 이곳 닭갈비골목은 조양동(금강로 62번길)에 속한다. 춘천의 대표적인 시장인 중앙시장(또는 낭만시장, 중앙로2가동)이 196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하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자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슷하다하여 이름 붙었다. 명동이 공식적인 지명이 아님에도 이 이름으로 편지나 택배를 부쳐도 안전하게 배달된다고 한다.
  • 유명세와 달리 닭갈비 음식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신라시대부터 내장을 뺀 닭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던 풍습에서 비롯됐다거나, 오래전부터 춘천에 도계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개발됐다는 설이 있다. 춘천역 앞의 캠프 페이지도 이전에 양계장 자리였다고 한다. 닭갈비집은 1950년대 후반 중앙로에서 양념 닭불고기를 팔았던 것으로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길 건너 낙원동과 요선동까지 확산되었다. 닭갈비는 실제 갈빗살이 아니라 주로 다릿살을 사용하기 때문에 닭갈비보다는 닭불고기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 이에 처음에는 닭갈비가 아니라 닭불고기로 시작하였다. 닭갈비라는 이름은 1974년 옛 춘성군청 자리 부근에 있던 육림닭갈비집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춘천의 유명한 닭갈비집이 개업한 때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다.
  • 또 다른 춘천 닭갈비 유래는 1960년대에 현재 다나연세의원(중앙로 59) 자리에 있던 선술집에서 시작한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돼지고기였는데, 어느 때엔가 돼지고기 수급이 어려워졌고, 이에 닭고기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 냈더니 반응이 좋아 돼지고기를 밀어내고 메인 메뉴가 됐다는 설이다. 오늘날 닭갈비는 12mm 무쇠솥에 양배추 등의 채소와 함께 볶아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초기 형태는 양념 닭 숯불구이였다. 철판이 등장하는 것은 1990년대이며, 이후 채소와 함께 볶는 요리 방식도 일반화되었고, 대중매체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으로 거듭났다. 닭갈비 요리에 철판이 등장한 것은 연료의 변화, 즉 가스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점차 도시가스의 공급이 확산되면서 불을 지피는데 불편하고 연기가 나는 숯이나 연탄 대신 가스가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걸맞는 조리 도구 무쇠 철판이 개발, 도입된 것이다.
  • 닭갈비가 갈비로 불리게 된 까닭은 뼈째 굽는 모습이 갈비구이와 비슷해서인 듯하다. 춘천에서 닭갈비는 초기에 서민갈비, 군인갈비, 대학생갈비 등으로도 불렸다.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사 먹을 만큼 돈이 많지 않는 사람들이 비록 갈비는 아니지만 갈비 먹는 기분이라도 내자며 갈비라는 이름을 고수했다고 한다.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어 치즈, 고구마, 떡, 야채, 우동사리 등의 각종 토핑이 추가되었고, 마지막엔 양념과 함께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며 전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문서 이력

  • 김종혁 : 2021년 7월 6일, 최초 작성
  • 김현종 : 2023년 9월, 문서 서식 조정

요구사항

  • 인구 정보도 조선시대 포함.
  • 조선시대 인구밀도 지도(춘천 중심), 그래도 강원도 내 순위를 제시하는 게 좋을 듯함.
  • 서술식이 좋을지 개조식이 좋을지 결정 필요(서술이 낭만이 있기는 함)
  • 사진을 넣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음. 20년전, 10년전, 현재, 장소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