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천안 도고산(조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역지사지(歷地思之) - 역사지리정보(HGIS)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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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위치 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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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_천안_도고산(조선)는 충청_예산_도고산(조선)은 동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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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지지의 천안의 도고산의 위치 기록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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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여지도 천안의 도고산의 표기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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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지지 ==
 
== 대동지지 ==
 
* 충청_천안/도고산(道高山) : 동남15리
 
* 충청_천안/도고산(道高山) : 동남15리
 
** 충청/천안/고사 : 양왕 2년(1390), 왜구가 양광도(楊廣道)의 여러 고을을 침략하자, 우리 정종(定宗)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윤사덕(尹師德)을 보내어 그들을 잡게 함. 영주(寧州) 도고산(道高山) 아래에서 적을 만나 백여 급(級)을 베고, 사로잡혔던 남녀를 데리고 돌아옴.
 
** 충청/천안/고사 : 양왕 2년(1390), 왜구가 양광도(楊廣道)의 여러 고을을 침략하자, 우리 정종(定宗)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윤사덕(尹師德)을 보내어 그들을 잡게 함. 영주(寧州) 도고산(道高山) 아래에서 적을 만나 백여 급(級)을 베고, 사로잡혔던 남녀를 데리고 돌아옴.
 
  천안은 충선왕 2년(1310)에 영주(寧州)로 이름을 바꿨다가, 공민왕 11년(1362)에 다시 천안부(天安府)로 되돌림. 고사에 있는 영주의 도고산의 위치 비정이 필요.
 
  천안은 충선왕 2년(1310)에 영주(寧州)로 이름을 바꿨다가, 공민왕 11년(1362)에 다시 천안부(天安府)로 되돌림. 고사에 있는 영주의 도고산의 위치 비정이 필요.
  영주의 범위에 따라 신창의 도고산과 동일 산일 가능성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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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은 당시 천안부에 소속됨. 신창과 예산 경계의 도고산이 위 고사의 도고산 가능성 유력.
 
* 충청_신창/도고산(道高山) : 서남16리 예산(禮山) 경계, 가장 높은 봉우리는 국사(國師)봉. 매우 깎아지른 듯이 높고 험함.
 
* 충청_신창/도고산(道高山) : 서남16리 예산(禮山) 경계, 가장 높은 봉우리는 국사(國師)봉. 매우 깎아지른 듯이 높고 험함.
 
** 충청/신창/장포(獐浦) : 서15리. 도고산(道高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돈곶포(頓串浦) 상류로 들어감.
 
** 충청/신창/장포(獐浦) : 서15리. 도고산(道高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돈곶포(頓串浦) 상류로 들어감.
 
  신창의 도고산은 도고온천 부근의 산으로 대동여지도도 천안의 도고산과 별도로 표시됨
 
  신창의 도고산은 도고온천 부근의 산으로 대동여지도도 천안의 도고산과 별도로 표시됨
* 충청/예산/도고산(道高山) : 동북15리, 신창新昌) 경계. 은적사(隱寂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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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예산/도고산(道高山) : 동북15리, 신창(新昌) 경계. 은적사(隱寂寺)
 
  신창의 도고산과 같은 산 지칭.
 
  신창의 도고산과 같은 산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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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증동국여지승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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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_신창/도고산(道高山) : 남16리, 예산현(禮山縣) 산천에도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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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_예산/도고산(道高山) : 북11리, 신창현(新昌縣) 산천에도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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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신창/건치연혁 : 고려 초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9년에 다시 천안부(天安府)로 이속시킴. 공양왕(恭讓王) 3년에 본현 서쪽 장포(獐浦)에 성을 쌓고서 당성(溏城)이라 이름하고, 부근 주현(州縣)의 조세(租稅)를 여기에 수납해 두고는 이를 해상으로 조운(漕運)하여 서울로 수송하였으므로 비로소 만호 겸 감무(萬戶兼監務)를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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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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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 世家 卷第四十五 > 恭讓王 2年 > 6월 : 왜구가 양광도(楊廣道)를 노략질하여 음죽(陰竹)·음성(陰城)·안성(安城)·죽주(竹州)·괴주(槐州)에 이르니,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윤사덕(尹師德), 자혜윤(慈惠尹) 이방과(李芳果)·밀직부사(密直副使) 유용생(柳龍生)·김용초(金用超)·의덕부윤(懿德府尹) 곽충보(郭忠輔)를 보내어 잡아들이게 하였다. 영주(寧州) 도고산(道高山) 아래에서 적을 만나, 적의 머리 100여 급을 참하고, 포로로 잡힌 남녀와 가축들을 취하여 돌아옴.

2025년 10월 28일 (화) 02:31 기준 최신판

현위치 비정

  • 충청_천안_도고산(조선)는 충청_예산_도고산(조선)은 동일함
  • 대동지지의 천안의 도고산의 위치 기록 오류
  • 대동여지도 천안의 도고산의 표기 오류

대동지지

  • 충청_천안/도고산(道高山) : 동남15리
    • 충청/천안/고사 : 양왕 2년(1390), 왜구가 양광도(楊廣道)의 여러 고을을 침략하자, 우리 정종(定宗)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윤사덕(尹師德)을 보내어 그들을 잡게 함. 영주(寧州) 도고산(道高山) 아래에서 적을 만나 백여 급(級)을 베고, 사로잡혔던 남녀를 데리고 돌아옴.
천안은 충선왕 2년(1310)에 영주(寧州)로 이름을 바꿨다가, 공민왕 11년(1362)에 다시 천안부(天安府)로 되돌림. 고사에 있는 영주의 도고산의 위치 비정이 필요.
신창은 당시 천안부에 소속됨. 신창과 예산 경계의 도고산이 위 고사의 도고산 가능성 유력.
  • 충청_신창/도고산(道高山) : 서남16리 예산(禮山) 경계, 가장 높은 봉우리는 국사(國師)봉. 매우 깎아지른 듯이 높고 험함.
    • 충청/신창/장포(獐浦) : 서15리. 도고산(道高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돈곶포(頓串浦) 상류로 들어감.
신창의 도고산은 도고온천 부근의 산으로 대동여지도도 천안의 도고산과 별도로 표시됨
  • 충청/예산/도고산(道高山) : 동북15리, 신창(新昌) 경계. 은적사(隱寂寺)
신창의 도고산과 같은 산 지칭.

신증동국여지승람

  • 충청_신창/도고산(道高山) : 남16리, 예산현(禮山縣) 산천에도 나옴.
  • 충청_예산/도고산(道高山) : 북11리, 신창현(新昌縣) 산천에도 나옴.
  • 충청/신창/건치연혁 : 고려 초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9년에 다시 천안부(天安府)로 이속시킴. 공양왕(恭讓王) 3년에 본현 서쪽 장포(獐浦)에 성을 쌓고서 당성(溏城)이라 이름하고, 부근 주현(州縣)의 조세(租稅)를 여기에 수납해 두고는 이를 해상으로 조운(漕運)하여 서울로 수송하였으므로 비로소 만호 겸 감무(萬戶兼監務)를 둠.

고려사

  • 고려사 > 世家 卷第四十五 > 恭讓王 2年 > 6월 : 왜구가 양광도(楊廣道)를 노략질하여 음죽(陰竹)·음성(陰城)·안성(安城)·죽주(竹州)·괴주(槐州)에 이르니,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윤사덕(尹師德), 자혜윤(慈惠尹) 이방과(李芳果)·밀직부사(密直副使) 유용생(柳龍生)·김용초(金用超)·의덕부윤(懿德府尹) 곽충보(郭忠輔)를 보내어 잡아들이게 하였다. 영주(寧州) 도고산(道高山) 아래에서 적을 만나, 적의 머리 100여 급을 참하고, 포로로 잡힌 남녀와 가축들을 취하여 돌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