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 정송고현(조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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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동여지도, 동여도 : 건달산 남쪽, 남양 월경지(분향면) 부근. | * 대동여지도, 동여도 : 건달산 남쪽, 남양 월경지(분향면) 부근. | ||
| − | * 정찬모(화성지역학연구소장)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백리 [ | + | * 정찬모(화성지역학연구소장)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백리 [https://www.hsj.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89 화성저널] | 
| ** 조선 때 송산부곡이 남곡면이 됨. -> 근거확인필요 | ** 조선 때 송산부곡이 남곡면이 됨. -> 근거확인필요 | ||
| **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오산의 독산성을 침공하면서 왜장인 가토기요마사(加藤正)이 부하들에게 잣나무가 많은 마을은 침략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 덕분에 이 마을은 피해를 면했다고 하며 그리하여 이 마을을 정송(貞松)이라 함 | **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오산의 독산성을 침공하면서 왜장인 가토기요마사(加藤正)이 부하들에게 잣나무가 많은 마을은 침략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 덕분에 이 마을은 피해를 면했다고 하며 그리하여 이 마을을 정송(貞松)이라 함 | ||
2025년 10월 31일 (금) 14:30 판
기록
- 고려사 : 1018년, 송산부곡(松山部曲)에서 정송현으로 승격되어 수주로 내속
- 대동지지 : 서남쪽 35리, 본래 백제(百濟)의 송산(松山). 경덕왕(景德王)이 정송(貞松)으로 바꾸어 당성군(唐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음. 고려 현종(顯宗) 9년(1018년)에 내속.
- 고려사에는 현종(顯宗) 9년 지금의 명칭으로 개칭으로 기록. 대동지지의 기록 오류 가능성.
 
표기
- 대동여지도 : 정송현(貞松縣)
현위치 비정
- 대동여지도, 동여도 : 건달산 남쪽, 남양 월경지(분향면) 부근.
- 정찬모(화성지역학연구소장)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백리 화성저널
- 조선 때 송산부곡이 남곡면이 됨. -> 근거확인필요
-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오산의 독산성을 침공하면서 왜장인 가토기요마사(加藤正)이 부하들에게 잣나무가 많은 마을은 침략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 덕분에 이 마을은 피해를 면했다고 하며 그리하여 이 마을을 정송(貞松)이라 함
-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백2리의 오리골, 점말, 양지편과 백1리,웃말의 큰골, 까치골(鵲谷)을 병합하여 백리(栢里)로 정함
- 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300년가량의 느티나무가 있으며 보호수(경기-화성 - 48)로 지정.
- 잣골 : 잣>자>재, 재’는 지금은 단순히 ‘고개’의 뜻으로만 쓰이고 있지만 옛날엔 ‘산(山)’이나 ‘성(城)’의 뜻으로도 쓰였으며 ’잣‘으로 나온다
 
송산부곡의 위치비정이 핵심임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건달산 남쪽, 남양 월경지(분향면) 북쪽에는 조선시대에 팔탄면, 갈담면, 남곡면이 위치 남곡면이 가능성 있고, 백리도 백->잣->성 이라는 공식에 의해 성이 위치할 가능성 있어 고현 가능성 있음. 국가유산보존관리지도에는 여러 유물산포지가 확인되나, 국가지정유산, 지자체지정유산으로 정해진 곳은 없음. 현위치 비정 어려움.